10월 21, 2020

사회적 측면에서의 한미관계 – 긍정적인 측면 두번째

한국전쟁과 주한미군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략으로 세계 7대 전쟁 중 하나인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이는 단순히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고, 소련이 이를 도와주고,

또한 중국의 동의하에 전개된 것이 아니다.

전쟁이란 주로 침략하는 쪽의 승리가 확실시 되면 일어나게 된다.

당시 북한은 소련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전투준비가 완료된

육군 총 10개 보병사단, 해군 3개 위수사령부, 공군 1개 비행사단이 갖춰져 있었고,

소련제 T-34전차를 242대, 122㎜ 신형곡사포를 비롯해

총 552문의 곡사포와 120㎜ 박격포를 포함한 총 1,728문의 박격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남한은 모든 주한미군의 철수가 이루어진 상태였고, 병력도 북한의 절반인 약 10만 명이었다.

더욱이 당시 애치슨라인이 이루어져 미국 방위선에서 남한은 제외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한국군은 낙동강까지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미국의 발 빠른 대처와 UN군의 개입으로 인하여 남침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미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지금도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다.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것은 제2차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의 신속한 개입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하지만,

미군의 한국 주둔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전쟁억제이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힘이 없으면 우리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한국처럼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지역, 즉 적과 마주보고 있고

그 적이 언제든 다시 침략할 수 있는 상태라면 더욱이 그렇다.

하지만 한국은 주한미군을 배치함으로써 미군의 최고의 정보력을 공유하고,

최강의 군대와 함께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 바카라사이트https://hyundai.gu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