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 2020

한미 동맹의 성격

미국은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의 국가이익에 대한 생태적 위협, 비이념적 위협, 대내적 위협을 받고

새로운 안보전략을 모색하게 된다.

냉전시대에 향유하던 세계 지도국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는 한편 변화된 세계정세를 활용해

경제적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개입과 확대(Engagement and Enlargement)”를 기저로 한

국가안보전략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으로 하여금 여러 나라들과 여러 가지의 동맹을 체결하도록 한 “공산권 팽창에 대한 봉쇄” 라는

안보적 동기가 큰 탈바꿈을 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같은 경우에도 한미동맹에 위협이 될 만한 여러 요소들이 대두되었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미동맹의 목표였던 북한에 비해 한국의 국력이 크게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미 의회조사국(CSR)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국민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의 군사력이 저하되었을 것으로 간주,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우려하고 있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탄도 미사일 실험과 판매에 대해서도

그다지 우려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북한 위협 해소론은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공항에서 행한

“이제 전쟁은 없다” 는 연설에서 절정에 달했다.

둘째, 한국의 대북한관계개선정책으로 한반도가 가지고 있던 북한의 위협에 대한 공포심은

크게 완화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화해·협력정책은 북한을 동반자로 대우함으로써 적대감을 버리고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여 평화공존을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북한이 이 정책에 호의를 가지고 응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북한은 한국의 화해·협력정책을 받아들여 2000년 6월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남북 정상회담은 통일 내용을 포함한 5개항의 공동선언인 ‘6·15공동선언’ 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셋째, 한국 내 진보인사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퍼져나간 반미감정은 한미동맹에 부정적으로 작용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매향리 미군부대 폭격 훈련시비, 주한미군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

효순·미선의 죽음,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 등에 대하여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반미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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