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 2020

마녀재판의 시작과 전개 – 체포와 수사 및 소송절차

체포와 수사

마녀는 먼저 풍문에 의해 적발되었다.

즉 재판의 초기단계는 우선 피고가 누군가를 저주하는 따위의 마술을 썼고,

그 마술에 의해 누군가가 마법에 걸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피고의 자백이외에도 피고를 마녀로 단죄할 수 있는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장 보편적으로, 악마가 변신했다고 믿어진 작은 동물을 데리고 다녔다거나,

혹은 피고가 빗자루를 타거나 그 외의 방법으로도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거나 하는 것들이

증거로 채택될 수가 있었다.

이미 마녀로서 소추 받은 자가 심문과정에 자신이 아는 마녀를 지명하는 경우 또한 체포가 되었고,

마녀의 자식도 마녀로 간주되었다.

그 자식들은 때로는 고문에 의해 마녀로 조작되거나, 어떤 때에는 고문도 없이 그냥 화형 당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희생자들 가운데는 시비를 가릴 줄 모르는 유아들이 발견되는 것은

대체로 그들의 모친이 마녀였기 때문이다.

피의자가 수사과정에서 밤중에 집에 있지 않았거나 행선지를 대지 못하는 경우

‘마녀회의’에 참석한 근거가 되었다.

이에 더하여 고문을 가하는데도 비명을 지르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경우 마녀의 징표가 되었고,

체포되면서 지나치게 놀라는 모습이 마녀의 징표로 여겨지는가 하면

지나치게 차분한 것도 마녀의 습성으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결국 마녀로 한 번 의심을 받게 되면 마녀로 만들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셈이다.

소송절차

당시에는 유럽 여러 나라가 이태리 법학과 캐논법을 통하여

이른바 규문주의 소송절차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이 소송절차에는 고문이 합법화되어 있었다.

마녀는 바로 이 고문의 소산이었으며 이것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규문주의 소송절차의 당연한 결과였다.

15 ~ 16세기 로마법이 유럽 전역에 전파되기 전까지는 이른바 게르만법계에 속하는

이른바 형식적 증거법 주의가 증거법상의 원칙이 되어 있었다.

여기서 사실의 진실 여부는 이론상 또는 경험상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주장방법 자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실은 주장자 자신의 선서, 또는 이웃의 선서, 때로는 결투에 의해 제기되고 인정되었고,

피고인 자신도 마녀가 아니하는 선서, 이웃의 선서에 의해 형벌을 면할 수가 있었지만,

마녀인지 여부는 수족을 묶고 수중에 던져 보아 가라앉으면 결백한 것이 입증되곤 하였다.

그러나 그 결백이 입증된다고 하더라도 그 입증이 사실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다.

15 ~ 16세기경 로마법이 전래되면서 유럽은 이른바 논리증거주의가 채용되었다.

따라서 사실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경험상, 논리상 진실인 것을 확신시키기에

충분한 증거자료의 존재를 필요로 하였다.

1532년 제정되어 18세기말까지 독일 보통법이었던 카톨리나 형법의 증거원칙에 의하면

유죄의 증거로서 피고인의 자백 외에 2인의 증인의 증언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이에 위하더라도 법률에 정하는 정도의 정황증거가 있는 경우에는

고문에 의한 자백이 허용되어 이것이 마녀의 양산에 별다른 통제가 될 수 없었다.

참고자료 : 메이저파워볼사이트https://expom.io/